핵무기 없는 세상

핵무기는 인류와 지구에 중대한 위협이며, 이 위협은 계속 커져가고 있다.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갈수록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책자 다운로드
핵무기 없는 세상

다수의 국가는 2021년 발효된 획기적인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함으로써 핵무기 폐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였다.

그럼에도 9개국이 여전히 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며, 국제 규범과 자국 시민들의 핵무기 폐기 요구를거부하고있다. 이들은 해마다 핵무기 보유고의 현대화와 증강에 수십억 달러를 낭비한다.

핵 군비 경쟁이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오늘날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은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우리는 단 하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전 세계가 재앙에 이를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다른 무기와 비교 불가한 핵무기의 피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시급히 핵무기 폐기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완전하 폐기만이 핵무기의 추가 사용과 실험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세계 곳곳의 시민들이 일어나 행동을 요구해야만 가능하다.

세계 최악의 무기

핵무기는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무차별적이며, 비인간적인 무기이다. 하나의 폭탄만으로도 도시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고, 수십, 수백만의 사상자를 낼 수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핵무기를 “파괴력과 인류가 겪는 고통 (중략) 환경, 미래 세대,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가하는 위협이 독보적인 무기”라고 설명했다.

핵무기는 막대한 양의 방사선을 방출하여 공기와 토지, 물, 그리고 우리의 신체를 오염시켜 국경과 세대를 넘어 피해를 입힌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그것이 다시 사용될 현실적인 위험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국가들의 사람들에게까지도 파멸적일 것이다.

방독면은 감마선으로부터는 아무런 보호도 제공하지 못한다. 사진 제공: 리키 피트먼

핵무기의 여파

핵무기는 폭발과 함께 극심한 열을 방출한다. 피폭 중심지에 가까운 모든 사물과 생명은 즉시 재와 연기가 된다. 

중심부가 섭씨 100만 도가 넘는 거대한불덩이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지면의 온도는 태양 표면보다 뜨거운 수천 도로 치솟는다. 

극심한 열로 인해 폭넓은 지역에 화재가 발생하고, 유독 가스와 연기가 공기 중으로 배출되어 대규모화염 폭풍을 일으킨다.

피폭 중심지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사람들도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 더 멀리 있는 사람들도 밝은 섬광에 의해 눈이 멀게 된다.

폭발

핵무기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고압력의 충격파를 다량 생성한다. 이 공기의 파동은 수 킬로미터 거리를 이동한다.

핵무기의 충격파는 사람들을 공중으로 날리고, 기절시키고, 신체를 찢고, 폐를 짓누른다.

폭넓은 지역의 건물들이 완전히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그 잔해에 깔려 사망한다. 건물의 잔해는 충격으로 인해 미사일처럼 공중으로 발사된다.

핵무기로 인한 폭발은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고층 건물마저 파괴한다.

방사선

폭발을 일으키는 핵 연쇄 작용은 많은 양의 이온화 방사선을 방출한다. 이 방사선은 사람들의 몸에 깊숙이 침투하여 세포를 파괴하고 질병을 유발한다.

피폭 중심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사람들도 급성 방사선 중독으로 사망할 수 있을 만큼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방사선 중독의 증상으로는 구토, 잇몸 출혈, 설사, 탈모 등이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몇 달 이내로 사망한다.

일부 환자는 급성 중독에서 회복하기도 하지만 방사선의 지연 효과로 인해 수년 또는 수십 년 뒤에 사망한다.

일부 생존자들은 염색체 이상 등 여러 유전적 손상을 겪으며, 이는 후손에게도 유전될 수 있다.

낙진

핵무기 폭발은 거대한 버섯구름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방사성 먼지와 잔해가 기둥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된다.

이 물질은 기류를 따라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 광범위한 지역에 떨어진다.

이를 방사성 낙진이라고 하며, 폭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도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 일부 방사성 동위원소는 수년 또한 위험성을 유지하며, 토양, 수자원, 식량 자원을 오염시킨다.

전자기 펄스

핵무기가 고고도에서 폭발할 경우, 강력한 전자기 펄스를 방출하여 광범위한 지역의 전자기기를 파괴한다. 통신, 인터넷, 금융 시스템 모두 심각한 교란을 겪게 된다.

이 영향은 대기권 및 고고도 핵실험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처음 관측되었다. 1962년 미국이 태평양 존스턴 환초 지대 상공 약 400킬로미터의 우주 공간에서 핵무기를 실험했을 때, 1,45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하와이의 가로등과 전화 설비에 피해가 발생했다.

위력이 큰 핵무기가 고고도에서 폭발할 경우, 대륙 전체의 전자기기를 파괴할 수 있다.

미국 네바다주에 세운 모의 주택에 대한 핵폭발 실험 폭풍의 효과. 사진 제공: 미국 정부

아동의 더 큰 취약성

영유아와 아동은 핵무기의 영향에 특히 취약하다.

이들은 피부가 얇고 연약하므로 성인보다 화상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신체가 상대적으로 약해 폭발로 인한 폭풍에 더 취약하다. 그리고 세포가 빠르게 성장하고 분열하기 때문에 급성 방사선 증후군에도 더 쉽게 노출된다.

아이들은 붕괴하거나 불타는 건물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능력이 부족하며, 폭발 이후 생존하기 위해 대처를 하기도 힘들다.

1945년 미국의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한 아동이 화상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 도미시게 야스오

핵겨울과 기근

핵무기는 인류가 만든 장치 중 유일하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다.

100기 이상의 핵무기가 도시들을 타격할 경우, 그로 인한 화염 폭풍의 검댕과 연기는 지구를 뒤덮고 10년 이상 햇빛을 차단하게 된다. 그 결과 지구의 기온이 급격히 하강하는데, 이 현상을 핵 겨울이라고 한다.

암흑에 빠진 지구는 열대 지방에서도 혹한기를 겪게 될 것이다. 식량 작물은 초토화되고 농업 생산이 붕괴해 광범위한 기근과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감염병 유행과 희소 자원을 둘러싼 갈등도 만연하게 될 것이다. 이미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사망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될 것이다.

이른바 “제한적”인 핵전쟁, 즉 전 세계 핵무기 보유량의 일부만이 사용되는 경우조차도 세계 인구의 상당수를 아사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이러한 핵전쟁은 오존층을 심각하게 훼손하여 특정 암 발병률을 크게 높이고 해양 생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것이다. 많은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직면할 것이며, 지구에 가해지는 위해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강제이주와 경제 붕괴

핵전쟁이 발발하면 방사성 낙진에 노출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지를 떠나 인접 국가로 피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들은 즉각적인 피난처와 오염되지 않은 식량, 식수, 그리고 의료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피난민의 규모는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다수의 핵무기가 사용되면 국제 무역과 통신 또한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되며, 세계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빈곤을 더 악화시키고 인류의 발전 목표를 수십 년 뒤로 후퇴시킬 것이다.

그 어느 국가나 개인도 핵무기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소형 핵폭탄을 투하해 25만 명이 사망했다. 이는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된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많은 사망자가 불에 타 즉사했다. 다른 이들은 심각한 화상, 폭발로 인한 부상, 급성 방사선 증후군으로 인해 수 시간, 수일, 수 주에 걸쳐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망했다. 더 많은 사람이 수년에 걸쳐 방사선 관련 암과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참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세계 각국은 핵무기를 시급히 폐기해야 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은 끔찍했다. 학교 운동장에는 이미 숨졌거나 죽어가는 아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머니들은 자녀의 시체를 품에 안고 다녔다. 내장이 쏟아져 나오고 팔다리에 벗겨진 피부가 너덜거리던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고통을 덜어 줄 최소한의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멀쩡히 남아 있는 병원이 거의 없었고, 의료 물자는 파괴되었으며, 대부분의 의사와 간호사는 죽거나 다쳤기 때문이다. 폭탄 투하 이후 두 도시에 진입한 구조 인원들도 잔여 방사선의 위협을 무릅써야 했다.

희생자의 절대다수인 90%는 민간인이었으며,  이 중에는 약 3만 8,000명의 아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히로시마 폭격 당시 약 8,400명의 중학생이 민방위의 일환으로 방화선을 만들기 위해 야외에 나와 있었다. 이들 중 6,300명이 사망했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 사진 제공: 미국 정부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의 한 전시물.

폭심지

두 도시에서 폭발의 진원인 폭심지에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반경 1.2킬로미터 이내에서 폭탄의 피해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들의 거의 모두 즉사하거나 수주 내에 사망했다.

폭심지의 지면 온도는 섭씨 3,000도에서 4,000도에 이르렀고, 3.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사람들까지 화상을 입었다. 강력한 충격파는 반경 2킬로미터 이내의 목조 건축물 대부분을 파괴했다.

1킬로미터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급성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할 만큼의 이온화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이보다 훨씬 멀리 있던 사람들 또한 방사선의 지연된 영향으로 사망했다.

여파

폭격 직후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부모들은 자녀를, 아이들은 부모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다. 일부는 새까맣게 탄 유해나 유품만을 발견했고, 나머지는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 심각한 부상을 입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기에 가족들의 재회 과정은 더디었다.

“한참 뒤에 방공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운동장 곳곳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어요. 땅은 온통 시신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미동도 없이 죽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버둥거리거나 팔을 들어 올리는 사람도 몇 있었습니다.”

쓰지모토 후지오, 당세 5세, 나가사키

일부 희생자들은 겉으로는 드러나는 상처가 없었지만 갑자기 앓다가 사망했다. 구조대원들은 방사능을 이용한 신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죽음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

많은 임산부들이 유산을 겪거나 영아기에 사망하는 아이를 출산했다. 이는 폭탄의 방사선이 자궁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소두증을 비롯한 선천적 기형 또한 임신 도중 피폭된 아이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났다.

공격 한 달 뒤의 나가사키. 사진 제공: 미국 정부

나가사키에서 한 소년이 참사 이후 배급 식량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야마하타 요스케

신이치의 세발자전거

히로시마 폭격 당시, 세 살이던 테츠타니 신이치는 야외에서 평소에 즐겨 타던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는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몇 시간 뒤 숨졌다. 그의 두 누이인 미치코와 요코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훗날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이 아이들에게 절대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써주십시오.”

불에 탄 신이치의 세발자전거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 자전거를 본떠 만든 조각상이 제네바의 국제적십자·적신월 박물관에 있다.

신이치의 세발자전거는 핵공격 속에서 아이들이 겪은 고통을 상징하는 가슴 아푼 상징물이 되었다.

사진 제공: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데쓰타니 노부오 기증

히로시마의 자매들

두 살의 와타오카 기미노와 다섯 살 언니 히로노는 히로시마 폭격 당시 부모와 함께 집에 있었다. 네 식구 모두 목숨을 잃었다.

또 다른 자매인 카요코 역시 폭심지 인근에서 사망했다. 오직 맏언니 치즈코만이 생존했다.

기미노(왼쪽)와 히로노(오른쪽)의 이 사진은 원폭 투하 불과 하루 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제공: 이와타 미호

핵폭탄으로 인한 피폭

일곱 살의 이케모토 도루와 아홉 살인 누이 아이코는 히로시마 폭격 당시 폭심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장소의 실내에 있었다.

폭격 후 4~5일이 지나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발열과 잇몸 출혈 증상도 나타났다. 이는 급성 방사선 피폭의 증상이었다.

두 사람은 급성 증상에서 회복했지만, 결국 방사선 노출의 지연된 영향으로 도루는 11세, 아이코는 29세에 사망했다.

남매인 도루(왼쪽)와 아이코(오른쪽)가 1945년 10월 히로시마 적십자병원에 있다. 사진 제공: 기쿠치 슌키

생존자들

운 좋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일본어로 히바쿠샤, 또는 “피폭자”로 불리게 되었다.

많은 생존자가 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불편, 그리고 트라우마로 평생 고통받았다. 일부는 몸과 얼굴에 두꺼운 흉터 조직이 남았고, 또 어떤 이들은 유리 파편이 피부에 깊게 박힌 채 수십 년을 살아야 했다.

여성들은 핵폭탄으로 인한 유전적 손상이 후손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큰 고통과 낙인을 감내해야 했다.

폭격 몇 년 뒤, 방사선의 지연된 영향으로 생존자 사이에서 암을 포함한 각종 질환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율로 발병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특히 백혈병 발병률이 높았다.

핵무기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많은 생존자가 1945년 일어난 일을 공개적으로 증언해 왔다. 폭격 당시 아이였던 피해자 중 일부가 오늘날에도 생존해 있으며, 공격에 대한 증언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수십 년째 일관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 핵무기와 인류는 절대 공존할 수  없다.

2024년에는 생존자들을 대표하는 단체의 연합인 니혼 히단쿄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노력과 증언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생존자들의 용기와 헌신은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핵무기 폐기 운동에 동참하게 했다.

생존자이자 활동가

나가사키 폭격 생존자인 다니구치 스미테루는 당시 열여섯 살 소년이었다. 그는 “폭발의 섬광과 함께, 자전거에서 날아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방금 전까지 자기 주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모두 죽은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는 폭심지에서 거의 2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었음에도 등, 왼팔, 왼쪽 다리에 극심한 화상을 입었다. 또 상처가 감염되어 4년 가까이 입원해 있었으며, 그중 21개월은 엎드려 누운 채 지냈다.

상처의 고통은 평생 아물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일생을 핵무기 폐기 운동에 바쳤다.

다니구치 스미테루가 1946년에 촬영된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등에는 나가사키 원폭의 흉터가 남아 있다. 사진 제공: 나카오 유리코

핵실험의 여파

핵보유국들은 자국 핵전력의 파괴력과 살상력을 높이고 적국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1945년 이후 약 2,000회가 넘는 핵폭발 실험을 실행해 왔다.

이 실험들은 대기와 해양에 많은 양의 방사선을 방출해 암과 각종 만성 질환의 유행을 초래했다. 실험장이 폐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광대한 지역이 인간이 거주하기에 안전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 3주 전, 미국 정부는 뉴멕시코주에서 “트리니티”라는 암호명이 붙은 세계 최초의 핵폭발 실험을 했다. 핵폭탄의 거대한 화구는 모래를 유리로 바꾸었고, 주변의 산들을 밝게 비추었으며, 방사성 잔해로 이루어진 버섯구름이 상공 12킬로미터까지 솟구쳤다.

실험장의 노동자와 인근 지역사회가 겪은 후유증은 참혹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실험과 그 여파가 호주와 알제리의 사막, 카자흐스탄의 초원, 태평양의 환초 지대 등 세계 60곳의 실험장에서 일어났다.

13세의 이로지 케벤리는 1954년 미국이 마셜제도에서 핵무기를 실험했을 때 방사선 화상을 입었다. 사진 제공: 미국 정부

핵실험 폭발로 형성된 버섯구름. 사진 제공: 미국 정부

핵실험장

핵무기는 알제리, 호주,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 키리바시, 마오히 누이(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마셜 제도, 북한, 파키스탄,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미국, 우즈베키스탄에서 실험되었다.

특히 1945년부터 1980년까지 500회 이상 실행된 대기권 핵폭발 실험은 방사성 물질을 광범위하게 분산시켜 매우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 이 핵실험들의 파괴력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의 2만 9,000배에 맞먹었다.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몸에는 대기권 핵실험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으며, 이는 질병 위험을 높이고 있다. 의사들은 과거 핵실험으로 인해 최소 400만 명이 조기 사망할 것으로 진단했다.

수중 및 지하에서 실시된 핵폭발 실험 또한 장기적인 건강 및 환경에 대한 위험을 초래했다.

20세기 후반, 핵실험의 영향에 대한 우려는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결국 각국 지도자들은 1963년 핵실험의 부분적 금지와 1996년 포괄적 금지에 합의했다. 이 두 조치는 전 세계적 핵실험 중단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과거 핵실험이 사람과 지구의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앞으로도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피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발생한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 또한 있다.

핵실험 생존자들 가운데 자신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피해 보상을 받은 사람은 극소수이며, 옛 핵실험장을 정화하려는 노력도 불충분했다. 일부 실험장에서는 노후화된 기반 시설로 인한 추가 오염의 위험도 있다.

1971년 마오히 누이의 모루로아 환초에서 이루어진 프랑스의 핵실험 폭발. 사진 제공: 프랑스 정부

카자흐스탄에서 소련의 핵실험 폭발로 생긴 분화구. 사진 제공: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방사능 인종주의

핵실험과 관련된 결정의 배경에는 인종주의적 사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와 식민 지배 세력은 원주민과 그들의 신성한 땅을 희생할 수 있는 무가치하고 “외딴” 곳으로 간주했다.

2017년 유엔에서 호주 안쿠니차차라 아낭구 출신 여성 카리나 레스터는 원주민 단체들의 연합을 대표해 “우리의 땅과 바다, 공동체, 그리고 우리의 몸은 이 치명적인 실험의 유산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대가 그 짐을 지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더욱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당국이 원주민을 “실험용 기니피그”처럼 취급했다고 말했다. 원주민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으며, 보호 또한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

핵실험의 여파로 인해 많은 원주민 공동체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단절해야 했고, 수 세기 또한 살아왔던 터전으로 돌아가거나 조상의 땅과 바다에 의지할 수 없게 되었다.

호주: 폭탄으로 잃은 시력

1953년, 영국 정부는 10살의 야미 레스터가 사는 호주 아웃백의 에뮤 필드에서 핵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하늘을 메운 방사성 잔해, 이른바 “검은 안개”를 기억했다. 그 안개는 그의 눈을 따갑게 만들었고, 그는 4년 뒤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저는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폭탄이 터졌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소리를 기억합니다. 기괴한 소리였어요. 크지는 않았지만, 이전에 들어본 그 어떤 소리와도 달랐습니다. 그와 동시에 땅이 흔들렸고, 땅 전체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몇 시간 내로 그의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구토했고, 설사, 피부 발진, 안구 통증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몇몇 노인들은 돌아가셨습니다.”

야미는 이후 핵실험으로 피해를 입은 호주 원주민을 대표하는 활동가가 되었다. 그는 2017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자녀들은 정의를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 제시 보일런

카자흐스탄: 팔 없이 태어난 예술가

카리프베크 쿠유노프는 소련 최대 핵실험장인 세미팔라틴스크 인근 카자흐스탄의 예긴디불라크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 핵폭발 실험이 있을 때마다 집의 가구와 식기가 흔들렸다고 회고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 그의 부모님은 거대한 버섯구름을 더 잘 보기 위해 집 근처 언덕에 오르곤 했다.

그는 “부모님이 자신들에게 자행되고 있던 범죄가 건강에 미치는 참혹한 영향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카리프베크는 1968년 두 팔 없이 태어났다. 그는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려 저명한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의 작품들은 반핵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이 땅에서 저의 가장 큰 사명은 저 같은 사람들이 핵실험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구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중략) 우리의 하늘이 깨끗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건강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1949년부터 1989년까지 소련은 세미팔란틴스크에서 450회가 넘는 핵폭발 실험을 했으며, 이는 전 세계 핵실험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카리프베크 쿠유코프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공포”.

마셜 제도: 방사능에 오염된 환초 지대

네르제 조지프는1954년, 미국이 마셜 제도 롱겔라프 환초에 있는 그의 집에서 약 1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핵실험인 “캐슬 브라보”를 실시했을 때 일곱 살이었다.

이 실험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고, 오염도 훨씬 더 심각했다. 하늘은 주황빛과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환초 주민들은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몇 시간 뒤 방사성 재와 산호 파편이 집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주민들의 피부와 식수, 식량을 오염시켰다. 곧 사람들은 급성 방사선 증후군의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네르제의 머리카락은 빠지기 시작했고, 그와 환초 지대 주민들은 화상을 입었다.

며칠 뒤 미국 정부는 건강에 대한 방사성 낙진의 극심한 위험 때문에 롱겔라프 주민들을 다른 환초로 대피시켰다. 그러나 3년간의 이주 생활이 이어진 뒤, 당국은 잔류 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자 그들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당시 한 미국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종류의 자료는 이제껏 얻은 적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서구인들처럼, 문명인들처럼 살아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쥐보다는 우리와 더 비슷합니다.”

그러나 롱겔라프 주민들에게 귀향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암, 유산, 사산, 선천적 기형이 급증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축적된 탓에 네르제는 수술로 갑상선을 적출해야 했다. 그는 핵실험 이전의 평온했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은 마셜제도에서 67회의 핵폭발 실험을 실시했다. 캐슬 브라보 단독으로도 히로시마 원폭보다 1,000배 큰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환초 지대 전체가 거주, 농업 생산, 어업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네르제 조지프의 탈모와 방사선으로 인한 발 화상. 사진 제공: 미국 정부

그 밖의 피해 원인

우라늄 채굴에서부터 방사성 폐기물 처분에 이르기까지, 핵무기 개발의 다른 단계들 역시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핵무기 제조가 시작되는 우라늄 광산에서는, 폐석 더미에서 나온 방사성 및 화학 오염물질이 토양과 수로로 스며들어 노동자들과 인근 공동체에 피해를 주었다. 전 세계 어느 광산도 채굴이 끝난 뒤 완전히 정화된 적은 없다.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에 사용한 원자로에서도 방사능 오염이 발생했다. 영국의 윈드스케일 원자력발전소에서는 1957년 화재가 3일 동안 계속되며 방사능 기둥이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인근 농장에서 생산된 우유는 모두 폐기되어야 했다.

또한 전 세계 많은 공동체는 1945년 이후, 수만 기의 핵무기 생산 과정에서 축적된 막대한 양의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문제와 관련해 지금도 각종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폐기물은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위험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반핵 시위대. 사진 제공: 잭 코언조파

오늘날의 핵무기

오늘날 9개국이 수천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인구에게 실존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백 기는 고도의 준비 태세 상태로 운용돼, 몇 분 안에 사용될 수 있다.

이 핵무기들은 미사일 사일로, 항공기, 잠수함에 실려 있다. 일부 탄두는 수천 킬로미터를 날거나 대륙을 가로질러 목표물에 도달할 수 있다.

팩트: 현재 세계의 핵보유국 9개국이 보유한 핵무기는 약 12,241기로 추산된다.

대부분의 핵무기는 핵시대의 태동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보다 훨씬 더 큰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가장 위력이 큰 폭탄은 재래식 화학 폭탄인 TNT 100만 톤, 즉 1메가톤이 넘는 위력에 맞먹는다. 

전장에서 사용되도록 개발된 이른바 “전술핵무기”조차도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0배에 달하는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핵무장 잠수함 한 척이 12기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으며, 각 미사일에는 여러 개의 핵탄두가 장착된다. 이들의 파괴력을 합치면 100개가 넘는 도시를 파괴할 수 있다.

핵무기가 배치된 군사기지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핵 공격의 희생자가 되거나 사고로 인한 핵폭발로 피해를 입을 위험이 크다. 정부의 보안 때문에 몇몇은 자신이 핵무기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대다수의 핵무기는 단순히 보관된 것이 아니다. 대신, 언제라도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각국 정부는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국의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핵보유국은 핵무기 사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새로운 핵무기와 발사 체계를 개발하는 중이다. 이들은 핵전력을 무기한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2023년 군사 퍼레이드에 등장한 러시아의 핵미사일. 사진 제공: 러시아 정부

박물관에 전시된 미국의 핵미사일. 사진 제공: 미국 정부

핵무장 국가

오늘날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총 9개국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와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이 가장 크다.

공모 국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9개국뿐이지만, 30개가 넘는 국가들이 핵무기의 보유와 잠재적 사용을 옹호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동맹국의 “핵우산”에 의한 보호를 주장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예컨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국들은 모두 핵무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는 자국 영토 내에 미국의 핵폭탄을 배치하고 있으며, 투하를 위한 항공기와 인력 또한 제공했다. 벨라루스도 러시아의 핵무기를 배치하며 유사한 협정을 맺고 있다.

일부 국가는 타격 목표 설정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거나, 핵무기를 탑재한 함정이 자국 영해를 통과하고 입항하는 것을 허용한다. 또 핵무기가 실린 항공기가 자국 영공에 진입하고 공항에서 급유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러한 모든 공모 행위는 핵무기로 인한 위험을 지속시키고 군축을 위한 움직임을 방해한다.

독일에서 시위대가 미국 핵폭탄이 배치된 군사기지를 봉쇄하고 있다. 사진 제공: 랄프 슐레제너

핵무기 확산에 대한 우려

핵보유국들이 군축에 실패함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국가들, 심지어 비국가 단체들까지도 언젠가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커졌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군축은 필연적이다.

핵무기 확산을 위한 핵심 조치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러한 규정들의 실효성은 불확실하다. 우라늄 농축이나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국가는 단 수개월 만에 핵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은 “평화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시설과 물질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러한 사례는 원자력 프로그램이 핵무기 확산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 몇 킬로그램의 고농축 우라늄이나 분리된 플루토늄으로도 핵폭탄 1기를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물질은 세계 곳곳에 수백 톤 단위로 비축되어 있으며, 지금도 추가 생산되고 있다. 군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

핵무기 폐기의 필요성

핵무기의 파멸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피해로부터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핵무기 폐기를 위해 시급히 행동하여야 한다.

핵무기 폐기를 위한 전 세계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이미 수만 기의 핵무기가 해체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자국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했으며, 수십 개의 국가가 핵무기 도입 계획을 백지화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에는 약 7만 기의 핵무기가 운용됐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의 핵무기 보유량은 급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핵무기 해체 프로그램이 사실상 중단되었고, 일부 핵보유국들이 전례 없는 속도로 보유량을 확장하고 있다.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 계획을 제시한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세계 대다수 국가는 여전히 핵무기에 강력히 반대하며, 지체 없이 폐기되기를 원하고 있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거나, 사용 조건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무기가 지구상 모두 생명에 가하는 위협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완전한 폐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Artists Against the Bomb’ 설치 작품. 사진 제공: 미키 아나그리우스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이며, 비민주적인 무기

핵무기는 막대한 규모의 인명 피해와 파괴를 초래하며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무기이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불구로 만드는 행위는 결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핵무기의 사용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중대한 전쟁 범죄이다.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는 무기는 결코 정당한 군사적 또는 전략적 목적을 가질 수 없다.

핵보유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여론조사들은 핵무기 폐기에 대한 압도적인 대중의 지지를 보여준다. 여론을 묵살하며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는 국가들은 자국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

가장 끔찍한 무기인 핵무기가 사라진다면, 인류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증가하는 핵무기의 사용 위협

우발적으로든, 의도적으로든, 오늘날 핵무기가 사용될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으며, 계속 커지고 있다.

이는 긴박한 국제 안보 환경, 핵보유국들 사이의 긴장, 그 국가들의 핵전력 증강, 그리고 국제 규범과 제도의 약화와 같은 요인들 때문이다.

군사 영역에서 사이버 공격 역량, 자율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이러한 위협을 더 증대한다.

핵무기를 몇 분 내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도의 경계 태세로 유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미 발사된 핵탄두 미사일은 되돌릴 수 없다. 설령 잘못된 정보로 인해 핵무기가 발사됐더라도, 그 미사일은 계속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지도자들은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특히 혼란스럽고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핵무기를 이용한 완전한 파괴 권한이 극소수의 개인에게 집중된 만큼, 순간적인 혼란이나 무자비함, 자존심이나 의사소통의 실패로 인해 전 지구적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냉전 시기에는 전면적인 핵전쟁 위기가 수차례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62년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1945년 이후 핵무기가 분쟁에서 사용되지 않은 것은 훌륭한 관리의 결과라기보다는 단순한 행운에 더 가깝다. 이 위협을 제거하려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그 행운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핵 억지력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흔히 “핵 억지력” 이론을 내세운다. 이들은 자국의 핵무기가 오로지 다른 국가의 선제 핵 공격을 막기 위한 도구이며, 오히려 평화와 안정을 증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국가는 이러한 논리를 인정하지 않고 핵 억지력을 위험하고 잘못된 안보 정책으로 본다. 또한 핵 억지력의 본질은 대규모의 죽음과 파괴의 위협에 의존하는 호전적인 접근법이다. 

핵 억지력 지지자들의 주장과 달리, 핵무기의 존재로 분쟁이 예방되지 않았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도 공격 대상이 되었다. 오히려 핵무기는 긴장 상태를 강화하고 강압과 협박을 유도함으로써 분쟁의 가능성을 더 높였다.

억지 이론은 핵무기가 정당하고 바람직한 안보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핵무기의 확산을 부추기고 군축을 가로막는다.

사고와 실수들

핵무기 사용의 위험은 고의적 이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는 인적 오류, 기술적 결함, 사이버 공격, 오인 경보, 지휘통제 체계에 대한 무단 접근으로 인해 폭발할 수도 있다.

1945년 이후 핵무기와 관련해 수차례 발생한 사고들, 그리고 오류로 인해 핵무기 발사 직전까지 갔던 사건들은 의도치 않게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1968년에는 핵폭탄 네 발을 탑재한 미국 항공기가 화재로 인해 그린란드에 추락, 주변 지역을 플루토늄으로 오염시켰다. 폭발이 발생했지만, 핵 연쇄반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5년에는 러시아 당국이 노르웨이의 연구용 로켓을 미국 잠수함이 발사한 탄도미사일로 오인했다. 러시아 대통령은 반격을 위한 발사 코드를 준비했지만, 결국 오인 경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 외에도 핵무기가 바다에서 유실된 사건, 핵무장을 한 잠수함끼리 충돌한 사건, 새 떼나 구름에 반사된 빛이 핵탄두 탑재 미사일로 오인된 사건, 그리고 훈련용 테이프가 실수로 실제 운용 중인 컴퓨터에 삽입되어 핵 공격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한 사건 등, 우려스러운 사례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196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폭격기의 날개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서 핵폭탄 두 발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아주 근소한 우연의 차이, 두 가닥의 전선이 교차하지 않은 덕분에 핵폭발이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미국 정부

인도주의적 대응의 부재

세계 어디에서든 단 한 발의 핵무기라도 사용된다면 보건 인프라가 붕괴해 인도주의적 대응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수 킬로미터에 걸친 완전 파괴 구역에 있는 병원과 약국, 소방 장비, 통신 및 교통 체계는 모두 전소되어 운용할 수 없어질 것이다.

부상자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방사능에 노출되어 생명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단 한 발의 핵무기가 사용되어도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우며, 전면적인 핵전쟁의 경우 더더욱 대처할 수 없다고 거듭 경고해 왔다. 또한 그러한 대응 역량은 앞으로도 결코 구축될 수 없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세계보건기구도 “세계에 남아 있는 어떠한 의료 시설로 그런 형태의 재앙을 완화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 히로시마 생존자가 그린 1945년의 구호소 모습. 부상자들은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사진 제공: 야마오카 후미코

방공호가 도움이 될까?

핵 벙커, 즉 방공호를 많이 짓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냉전 시기에 주목받았던 방공호 시설은 핵전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을뿐이다.

핵공격이 발생할 경우, 누군가가 사전에 경고를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대피할 시간 자체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폭심지 부근에 있는 많은 벙커는 화덕처럼 변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망할 것이다. 실제로 일부 핵무기는 벙커를 파괴하기 위해 지하 깊숙이 관통하도록 특별히 설계되어 있다. 설령 제때 벙커를 찾아 들어가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밖으로 나왔을 때 마주하게 될 것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위험한 환경이며, 구조 가능성도 희박하다.

자원 낭비

핵보유국들은 해마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자국의 핵전력을 강화, 확대하고 있다. 이 돈은 보건의료, 교육, 빈곤 완화,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투자될 수 있는 재원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업들이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을 지원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다. 싱크 탱크와 고등 교육 기관 또한 이에 관여하며 재정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인류를 위협하는 투자를 중단한다면 다른 목적을 위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장 뛰어난 과학 인재들이 대규모 살상과 파괴 능력을 완성하는 데 힘을 쏟는 대신,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영국에서 건조 중인 핵무장 잠수함. 사진 제공: 영국 정부

평화를 막는 장애물

핵무기는 오늘날의 그 어떤 안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기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거나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핵무기 폐기가 실현된다면 국가간 더욱 평화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고, 더 밀접한 국제 협력의 기회를 열 수 있다. 이는 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수혜가 돌아갈 것이다.

핵무기 폐기는 국가 안보와 집단 안보의 이익을 함께 증진하는, 최고의 세계적 공동선이 될 것이다.

젠더 비평

핵무기 사용 의지를 드러내는 지도자들은 흔히 남성적이고, 강인하며, 결단력 있는 인물로 칭송받지만, 군축을 지지하는 이들은 여성적이고, 나약하며, 감정적이라는 식으로 폄하되고는 한다.

더 나아가 핵무기를 둘러싼 공적 논의와 의사결정은 대체로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고, 더 큰 젠더 다양성과 포용을 보장하는 것은 군축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핵무기 금지 조약

2017년,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과 그 협력 단체들이 10년에 걸쳐 노력한 끝에 122개국이 핵무기를 불법화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조약은 2021년에 발효되었다.

그전까지 핵무기는 대량살상무기 가운데 유일하게 포괄적이고 전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금지 체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새로운 조약은 국제법의 중대한 공백을 메웠다.

이 조약은 핵무기가 인류의 생존, 환경, 사회·경제적 발전, 세계 경제, 식량안보, 그리고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건강과 복지에 가하는 중대한 위협에 대한 깊은 우려 속에서 탄생했다.

이 조약은 핵무기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최초의 다자조약일 뿐만 아니라, 핵무기 폐기를 검증할 수 있는 틀과 핵무기 사용 및 실험의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틀을 처음으로 마련한 조약이기도 하다.

팩트: 현재까지 74개국이 핵무기금지조약을 비준하거나 가입했으며, 추가로 25개국이 서명했다. 더 많은 국가들이 이들의 뒤를 따라야 한다.

현재 핵보유국들은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 조약은 핵무기 사용에 대한 전 세계적 금기를 강화하고, 오랫동안 미뤄져 온 군축 활동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이다.

역사는 특정 유형의 무기를 금지하는 것이 그 무기의 제거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불법화된 무기는 점점 더 정당성을 잃은 것으로 인식되며, 그 정치적 지위와 함께 생산을 위한 자원 또한 잃게 된다.

 

“2021년 1월 핵무기금지조약이 발효된 것은 놀라운 성과였으며, 핵무기 폐기를 향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2021년

시간이 지나 더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할수록 이 조약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핵보유국들이 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력도 한층 커질 것이다. 현재까지 세계의 절반이 넘는 나라가 이 조약에 참여했다

이 조약은 대규모 파괴의 위협이 허용되는 세계에 대한 중요한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중대한 위기의 시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2017년 TPNW 고위급 서명식. 사진 제공: UN 포토

핵무기금지조약의 주요 내용

금지 조항

핵무기금지조약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 실험, 생산, 획득, 비축, 이전, 사용 또는 사용 위협을 하는 것을 전적으로 금지한다. 또한 자국 영토 내에 다른 국가의 핵무기를 배치하는 행위와, 타국이 조약에서 금지된 활동에 관여하도록 지원하거나 장려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폐기를 위한 틀

이 조약은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 시설을 검증 가능하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마련한다. 이 조약에 가입하는 핵보유국은 즉시 자국 핵무기를 작전 상태에서 해제해야 하며, 협상을 통해 최대 10년 이내에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 또는 조약 가입 전에 핵무기를 우선 폐기하고, 지정된 국제기구를 통해 이를 검증받을 수도 있다.

피해자 지원과 환경 복원

이 조약은 국가들이 핵무기의 사용과 실험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의료 지원, 재활, 심리적 지원이 포함된다. 또한 핵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 지역을 복원하기 위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 이러한 조항들이 효과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다른 조약들과의 연계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무기와 관련된 기존 조약들을 강화한다. 여기에는 핵무기 보유국 수를 제한하고 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1968년에 제정된 핵확산금지조약도 포함된다.

국제사법재판소가 1996년에 확인했듯이, 모든 국가는 “핵 군축을 위한 협상을 추진하고 이를 타결에 이르게 할” 법적 의무를 지닌다. 이러한 목적을 향한 행동이 부족했다는 점이 핵무기금지조약한 협상의 주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 밖의 조약으로는 1996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과,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남태평양,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핵무기 없는 지대를 설정한 지역 조약들이 있다.

핵무기금지조약는 전쟁의 방법과 수단을 제한하는 국제인도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분쟁 당사자들은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별할 수 없는 무기, 또는 과도한 부상이나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는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핵무기금지조약 원본 문서. 사진 제공: 핵무기폐기국제운동

더 많은 국가들의 참여

어느 국가든 언제든지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할 수 있다. 현재 가입을 주저하는 국가들도 조약 가입국이 더 늘어나고, 자국 시민들의 요구가 더욱 커짐에 따라 참여를 검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다른 조약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중국은 핵확산금지조약이 협상되던 당시에는 이에 반대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 결국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영구히 집권하지 않는다. 현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이 조약의 장점을 차기 정부는 인정할 수도 있다.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궁극적인 목표인 “보편적 참여”을 위해 다른 국가들의 가입 독려할 의무를 가진다. 

이 조약에 가입하는 것은 핵무기는 용납될 수 없으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핵 전쟁의 위험이 커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이 조약은 최악의 무기를 제거할 수 있는 큰 희망을 제시한다.

“이 조약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특별한 기회를 바로 붙잡아 핵무기의 시대를 종식시킵시다.”

– 국제적십자위원회, 2020년

2025년 뉴욕에서 열린 핵무지금지조약 당사국 회의. 사진 제공: 핵무기폐기국제운동

군축을 실천한 국가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카자흐스탄

핵무기금지조약의 대표적인 지지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카자흐스탄은행동을 통해 핵무기 폐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독립했을 당시, 자국 영토에 1,400기 이상의 핵무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자국의 안보는 군축을 통해 가장 잘 보장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모두 포기하기로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1990년대 초,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막을 내릴 무렵 같은 결론에 이르러 보유한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해체했다. 이 조치는 이후 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해 검증되었다.

두 국가의 지도자들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이루는 데 자국이 기여한 바에 큰 자부심을 표해 왔으며, 다른 국가들에도 같은 길을 따를 것을 촉구해 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핵폭탄의 외피.

핵무기 폐기를 위한 행동

핵무기는 인간이 만들었기에 인간이 해체할 수도 있다. 여기에 기술적 장애물은 없으며, 오직 정치적 장애물만이 존재한다. 이미 수만 기의 핵무기가 해체되었다.

리더십과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군축을 향한 추가적인 진전도 매우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지역들이 핵무기 없는 지대로 선언되었다는 사실은, 언젠가 전 세계가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 군비 통제의 가장 큰 돌파구들 중 일부는 국제적 긴장이 높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위기는 지도자들의 사고를 집중시키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진보는 언제나 사회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강력한 풀뿌리 운동에 달려 있다. 오늘날 핵무기 사용에 대해 존재하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금기는 수십 년에 걸친 대중 저항 운동의 결과물이다.

개인이 세계 최악의 무기를 없애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몇 가지를 제시한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핵무기금지조약 지지를 위해 열린 횃불 행진. 사진 제공: 크리스티안 렘레루프

교육

핵무기 폐기의 필요성에 관한 정보를 친구, 가족, 동료들과 공유하라. 기사와 독자 투고를 하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공개 포럼, 강연회, 영화 상영회를 주최하라.

핵무기가 사람들과 환경에 가하는 피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핵무기에 대한 교육은 종종 1945년에 그 무기를 발명하고 투하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는 데 그치고 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생존자들, 그리고 핵실험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의 증언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종이학

일본에서 종이학은 전통적으로 건강과 장수를 상징한다. 오늘날에는 평화의 상징으로도 널리 인식되고 있으며, 핵무기 폐기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사사키 사다코는 두 살 때 히로시마 원자 폭탄의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몇 년 뒤 그는 방사선의 지연된 후유증으로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병원에 있는 동안 건강을 되찾고자 종이학 천 마리를 접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종이학 천 마리를 접는 데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고 열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일본 전역과 세계 곳곳의 어린이들은 핵무기 폐기를 지지하기 위해 종이학을 접어 왔다.

선출직 대표들에게 종이학과 함께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거나 직접 전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가사키의 기념비를 장식한 수천 마리의 종이학. 사진 제공: 핵무기폐기국제운동

옹호 활동

여러분의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고, 직접 만나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라.

2017년 이후,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어, 수천 명의 의원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해 핵무기금지조약에 준수를 약속하는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의 서약에 서명했다.

워싱턴 D.C.에서 파리, 시드니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의 도시들 또한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의 호소문에 동참함으로써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핵 위협의 심각성과 행동의 시급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이 세계 각국의 의원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있다. 사진 제공: 데릭 프렌치

시위

비폭력 시위는 핵무기에 대한 거부 의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이는 집회, 행진, 봉쇄, 촛불집회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세계 평화 및 군축 운동의 구성원들은 사람들이 이 대의에 주목하게 하기 위해 크고 작은 시위를 이어 왔다. 핵무기가 제작되고 배치되는 장소, 개발에 참여하는 대학, 그리고 의회 밖에서 수많은 시위가 일어났다. 

대규모 시위는 핵실험을 끝내는 데, 핵무기고의 확장을 멈추는 데, 1945년 이후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막는 데, 그리고 군축을 향한 압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 왔다.

오늘날에는 더더욱 행동이 필요하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반핵 행동. 사진 제공: 제시 보일런

투자 철회

일부 핵보유국에서는 기업이 핵무기와 그 구성품 생산에 참여하고,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핵무기 산업에서 투자를 철회하는 것은 금융기관들이 군축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이다. 이미 수백 개의 기관이 핵무기금지조약에 따라 핵무기 없는 금융을 약속했다.

개인들도 자신의 은행과 연금기금에 연락해 핵무기 관련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단체 소개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세계 모든 국가가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 및 비준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 세계 비정부기구들의 연합체이다.

2007년 호주 멜버른에서 창설되었으며, 그보다 10년 앞서 인도주의적 근거에 따라 대인지뢰를 불법화하는 데 성공한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의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핵무기를 불법화하고 폐기하기 위한 결연한 전 세계적 캠페인이 필요합니다. 이를 이번 세대 안에 실현하려면, 여론의 물결을 거대한 파도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를 핵무기 없는 세계로 끝까지 밀어갈 거대하고, 거세며, 거부할 수 없는 힘 말입니다. 그런 힘이 없다면, 가장 영감을 주는 지도자들조차도 흔들리고 말 것입니다.”

빌 윌리엄스, 핵무기폐기국제운동 공동창립자, 2006년

제네바에서 열린핵무기폐기국제운동 행동. 사진 제공: 오드 카티멜

창설 이래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생존자들, 그리고 핵실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일을 포함해, 핵무기에 대한 강력한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국제적십자위원회, 유엔 사무국,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여러 정부와 함께한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인식 개선 행사를 열고, 선구적인 연구를 발표하며, 전 세계 행동의 날을 조직하고, 고위 지도자들에게 직접 핵무기 폐기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팩트: 현재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113개국 700개의 협력 단체와 함께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2017년,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핵무기의 사용이 초래할 파국적 결과에 주목하게 한 활동과, 핵무기를 조약을 통해 금지하는 성과를 이루기 위한 획기적인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그 누구보다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 새로운 방향과 활력을 부여했다고 굳게 확신합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2017년

이 상은 핵시대가 시작된 이래 핵무기에 맞서 투쟁하며, 핵무기가 폐기되어야 한다고 외쳐 온 전 세계 수많은 활동가들과 뜻있는 시민들의 끝없는 노력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이것은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당장 시급한 문제이다. 미래 세대는 반드시 이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라야 한다.

히로시마 학생들과 함께한 행동. 사진 제공: 나카오쿠 다케오

세츠코 설로

열세 살 소녀였던 세츠코 설로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폭발로 의식을 잃었다. 그는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갇혔지만, 기어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 건물 안에 있던 제 급우들 대부분은 산 채로 불에 타 죽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주변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중략) 불에 탄 살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했습니다.”

핵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산 증인인 세츠코는 2017년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이 수상한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수락했다. 그는 “핵무기는 매일 매 순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위협하고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광기를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최근 채택된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 조약이 핵무기 종식의 시작이 되게 합시다”라고 말했다. “이 조약에 동참해 핵 절멸의 위협을 영원히 없애십시오.”

2017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세츠코 설로. 사진 제공: 조 스트로브

핵무기폐기국제운동 알림 신청

맨 위로